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애덤스 (문단 편집) === 사후 === 그가 사망한 이후 4년 동안 교전하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함대를 만날 경우 그들을 공격하는 동맹을 맺게 되자 잉글랜드 상관은 네덜란드 상관과 화해가 되었지만 콕스 일행들이 히라도에서 싸움질과 주색잡기 행동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바에 잭스 일행의 행동에 대한 것이 전해지면서 방위협의회의 잉글랜드 대표인 리처드 퍼슬랜드가 동인도회사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행동을 하면서 잉글랜드 상관의 콕스 일행들을 자바에서 소환하라고 명령했다. 콕스 일행들이 이를 불복했다가 퍼슬랜드가 황소 호를 통해 조지프 코크람을 보내서 잉글랜드 상관을 폐쇄시켰으며, 1623년 12월 22일에 콕스 일행은 일본에서 떠났지만 무사히 잉글랜드로 돌아간 사람은 윌리엄 이튼뿐이었다. 애덤스의 아들인 조지프 애덤스는 쇼군인 히데타다가 궁성으로 불러 아버지인 애덤스가 받은 영지와 특권을 모두 이어받았으며, 콕스 일행들이 떠난 직후에는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쇼군이 되어 쇄국 정책을 실시, 네덜란드인을 제외한 서양인들을 모두 일본에서 쫓아냈다. 애덤스(미우라 안진)의 묘는 현재에도 남아 있어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위치해 있는 츠카야마 공원에 가면 그의 부부묘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곳에서 가장 가까운 철도역은 [[케이큐 전철]]의 [[안진즈카역]][* 역명 자체가 '안진의 묘'라는 뜻이다.]이며, 역에서 약 1km정도 떨어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